四支의 按排를 보면 四支가 모두 東方一邊倒에 앉아 月日時가 歲支에 剋을 受하니 五行이 偏在하여 金木相爭을 하고 中宮 雙罡은 歲支의 偏官을 生助하니 手下가 곧 敵이 되는 셈이다.
失意時代의 大院君이 破落戶로까지 轉落되어 保命과 護身에 急急하면서 捲土重來를 꾀해오다 마침내 自身의 生子를 二十五代 哲宗의 뒤를 잇게 하여 王의 生父 곧 國太公의 자리에 오르면서 專權을 行使하기에 이르렀으니 그 時期가 卽 遊年 三十九歲에서 四十五歲에 이르는 兌上의 傷宮運이니 正確하게 四十四歲되던 癸亥年이었다.
이때의 遊年小運은 中宮 雙罡의 財運인데 遊年大運자리인 兌上 七火孫과 遭遇를 하는 運이라 火藥庫에다 불을 그어 댄 相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兌上 熒惑이 中罡을 通해 歲上 偏官을 助하고 官星이 開門福德을 만나니 단지 名目 뿐이던 王族이었고 더구나 어제의 破落戶 身勢가 一躍 國太公의 자리에 앉아 全權을 專斷할 수 있는 莫强한 그 餘勢가 과연 어디서부터 나왔을까?
그것은 곧 한마디로 말해 運이었던 것이다.
遊年 四十六歲에서 五十二歲 사이는 兌上傷官 七火의 反復되는 日上 七火 자리라 亦是 中宮을 通해 歲支의 官星으로 이어지니 天下의 大院君의 得意滿面이던 한때를 보는 듯하다.
八年 盛運에 十年權勢를 누리다가 權不十年이라는 俗談名言이 맞아떨어져 그의 나이 五十四歲되던 高宗 十年에 閔妃에 依해 失脚되고 말았으니 이때의 大運은 五十三歲에서 六十歲에 이르는 兌上 干數인 八木 劫財運이다.
劫財란 本是 財物만 劫奪하는게 아니라 競爭者나 對立者를 말하니 곧 政敵이 되는 것이다.
驚門 遊魂과 壬加丙等의 凶相인데 壬加丙은 日落西山이라 하고 廻光返照에 爲期不遠이라 했으므로 이 글귀는 용케도 沒落돼 버린 大院君의 處地를 그대로 비친 글귀라 하겠다.
아무튼 波瀾萬丈하던 大院君의 生涯를 그대로 照明해 주듯 그의 命局은 起伏과 屈折로 얼룩진 글자 그대로의 破局的 命局이라 하겠다.{371}
이 四柱의 決定的인 問題點은 四支와 中宮이 流通이 되지 않은 데에 問題가 있다.
卽 中宮 雙財가 歲官을 助하여 權座에 오르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그 官星이 印綬를 못만나 通氣가 안되므로 結局엔 權으로 일어섰다가 權으로 亡하는 敎訓만 남긴 셈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