用事解斷이란 各種 占課에 關한 成敗與否를 決하는 斷時法을 말한다.{606}
예로부터 某事는 在人이오 成事는 在天이란 말이 있듯 사람은 누구나 다 自身이 하는 일에 成事를 바라는 마음은 人之常情이지만 그러나 하늘의 뜻은 헤아릴 길이 없어 成敗與否를 놓고 焦燥해 하는 게 한치 앞도 가늠하지 못하는 人間의 한 초라한 斷面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軒軒丈夫라 한들 自身에 對한 一生一代의 成敗나 生死가 걸려있는 重大事를 눈앞에 놓고 超然해 할 丈夫가 몇이나 될까?
그러기에 大人도 門卜을 하고 小人도 問卜을 하되 大人은 門咎요 小人은 問福이니 安心立命에 生의 目標를 設定한 大人과 食以爲天이 全部인 小人과의 價値觀의 差異요 또한 生의 次元이 다른데서 일어나는 高低次元의 差異라고 할 수 있겠다.
오늘을 사는 知性人들이 占事를 마치 文明社會가 解決해내지 못한 永久 未濟事件이거나 아니면 打破해 버려야할 原始殘存的 遺物쯤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곧 文明人의 橫暴요 自己欺瞞이며 同時에 獨善인 것이다.
宇宙를 征服할 수 있는 科擧人이 고작 滄海의 一粟에 不過한 自己人生의 窮極的 向方하나 提示해내지 못하고 神에게 豫託하거나 아니면 所謂 八字란 없는 것이다. 라는 獨白이나 吐해 내는 虛弱한 群像들이 어찌 占事와 問卜을 禁忌할 수가 있단 말인가.{607}
東洋의 精神的 支柱라 할 四書三經의 書經中 洪範九疇가운데는 「一曰 五行이요 二曰 敬用五事며 三曰 農用八政이며 四曰 協用五紀이요 五曰 建用皇極하고 六曰 文用三德하고 七曰 明用稽疑하고 八曰 念用庶徵하며 九曰 嚮用五福에 威用六極」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굳이 洪範九疇를 모두 밝힐 必要는 없으므로 餘他는 省略하기로 하고 다만 七曰 明用稽疑에 關한 얘기만 簡略하게 敷衍하고자 한다.
明用稽疑란 곧 占을 쳐서 疑問과 疑心을 풀어 밝히라는 뜻인 것이다.
일찍부터 하늘을 섬길 줄 알고 또 하늘과 自然을 崇仰하며 살아온 東洋民族이 疑問點을 神에게 물으라고 가르치지 않고 占을 쳐서 밝히라고 한 여기에 東洋人의 閃光과도 같은 叡智가 번뜩이고 있음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占을 쳐서 알 수 있는 것은 事物의 機徵인 것이며 이 機徵은 곧 天意인 것이므로 이렇게 해서 天意를 傳達받을 수 있는 行爲 自體가 一種의 宗敎的 行爲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現代人들의 宗敎行爲가 所謂 絶對者의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스스로 祈禱하며 自問自答으로 求하려는 懇求行爲보다 이 明用稽疑는 한층 簡潔하면서도 한 차원 높은 行爲가 아닌가도 생각된다. 虛頭가 좀 길어졌지만 이제부터 本論으로 들어가 보자.
用事占의 가장 基本的인 形態가 곧 斷時라는 形式인 것이다.
따지고 보면 사람의 八字도 斷時에서 비롯된 것인데 태어난 生時를 基點으로 하여 四柱가 形成된 然後에 얼마를 살던 간에 그 사람이 죽기 전까지는 斷時(四柱)의 効能은 有効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 事件이 勃發한 그 時의 機徵을 捕捉하여 成敗與否를 가려내는 行爲가 곧 斷時인 故로 斷時局의 効能은 한 事件이 終結되기 前까지는 그 効力이 存在한다.{608}
그러나 이를 運用함에는 高度의 修練이 必要함은 勿論이려니와 이를 다루는 一種의 技術같은 것도 익혀 둬야 한다.
우선 꼭 지켜야할 外的事項은,
첫째 一事一占主義의 原則固守
둘째 同一時間帶의 複數占事는 借客法으로 處理할 것,
셋째 多端한 素材를 壓縮하여 占課를 單一化 시킬 것 등이고 그 다음 內的으로 지켜야 할 점은
첫째 信念의 固守가 必要하고,
둘째 思無邪한 마음 바탕위에서 占事를 영위할 것 등이다.
以上의 要領으로서 斷時占課를 運用하다보면 奇門斷時의 効用이 그 얼마나 正確한가를 스스로 立證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