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論介 檀紀三九⦁七年(一五七四) 九月三日戌時
以臣伐君으로 王權을 簒奪한 李成桂의 苦憫은 萬若 自己와 똑같은 四柱를 가진 者가 있어 自身이 남의 王業을 훔치듯 그 者도 自身의 王權을 훔치려 든다면 어쩌나 하는데 있었다.
그는 결국 令을 내려 自己와 같은 四柱를 타고난 정선고을의 農夫 한 사람을 발견했는데 그는 우연히도 三百七十二통의 꿀벌을 치는 養蜂家에 不過했다.{379}
天無二日이요 地無二君이라 제아무리 王材로 태어났다고는 하지만 한나라에 두 사람의 王이 있을 수 없으므로 어차피 한 사람은 轉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게 天道의 定則임을 깨달은 뒤에야 겨우 安心할 수가 있었다.
英祖와 論介의 경우도 例外일 수는 없다.
生年月日은 달라도 四柱는 글자 한자 틀리지 않는데 한 사람은 萬乘의 王權을 누리는 萬人之上의 尊貴한 몸이 되었고 또 한 사람은 더구나 女子이기에 崎駆한 險路를 걷다가 마지막에는 倭將의 목을 안고 晋州南江에 投身한 節婦로서 길이 歷史的 追仰을 받는 人物로 남게 되었다.
四支가 同宮에 會集하여 丁奇重疊에 生門福德인데 四干이 非沖地에 들어 開門生氣를 만난 채 四支를 生하니 이는 無常大貴格이요 四干에 모두 天乙을 탔으므로 더욱 亦如하다.
王道에는 用權 用殺이 捷徑이라 四支上에서 下沖上하는 것이나 四干上의 六儀擊刑도 모두다 王權保衛의 次元에서 결코 凶이라 할 수 없겠으나 한갓 匹夫나 아녀자의 경우에는 이 모두가 大忌하는 凶厄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므로 遊年 十六歲에서 二十二歲사이가 離上의 正官宮에 들어 杜門禍害에 六儀擊刑이라 지아비를 잃음도 勿論이요 심지어 自身의 한 몸마저 救國一念의 化身으로 던질 수가 있었다.
'감명실례 > 東精' 카테고리의 다른 글
02. 安重根 義士 (0) | 2022.12.06 |
---|---|
03. 金弘集 (0) | 2022.12.06 |
01. 太祖 李成桂 (0) | 2022.12.05 |
02. 英朝大王 (0) | 2022.12.05 |
03. 高宗黃帝 (0) | 2022.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