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一七과 李厚洛
解斷 氏는 한동안의 空白을 깨고 維新體制의 마지막 國會議員에 進出했었다.{597}
故鄕인 蔚山에서 無所屬으로 그는 한동안 金鍾泌氏와 黨權競爭에 나서기도 했지만 五一七事態로 因해 蔚山地域에 所謂 李厚洛王國의 沒落을 가져오기도 했고 그 후에는 隱遁生活을 하고 있는 氏의 近況에 비추어 五一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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