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承晩 初代大統領{380} 乙亥二月十九日子時
風雲이 急迫하는 時代에 태어나 亡國의 悲哀를 體驗하면서 異國萬里에서 風餐露宿을 일삼으며 祖國의 光復을 爲해 몸 바쳐온 雩南이었건만 建國以後의 大統領으로서의 雩南은 한마디로 말해서 國民들에게 失意와 落膽만을 안겨다 주었으니 그의 十二年의 枇政이 그것을 잘 말해주는 듯하다.
波瀾萬丈한 그의 生涯를 便宜上 몇 段階로 나누어서 遊年의 흐름과 比較해 보고자 한다.
檀紀四二三十年(一八九七) 그의 나이 二十三歲되던 해에 獨立協會 事件으로 投獄되어 無期刑으로 宣告를 받아 獄中身勢가 되었으니 이때 遊年은 十八歲에서 二十四歲까지의 艮上 十土財宮인데 아무리 財가 官을 生해 준다고 하지만 非動處의 極遠한 官을 쉽사리 生할 길이 없는데 어째서 그와 같은 重刑의 官詞를 입게 되었을까?
그러나 이 문제는 간단하게 解答을 얻을 수가 있다.
卽 十土가 丑土의 本方에 앉아 陰年을 맞았으나 이는 丑土로 行勢하므로 中宮 二火와 坤上 四金이 巳酉丑 三合하니 對角線의 三支數가 皆金局이라 이는 곧 官이 되므로 官災被刑이요 坤上 天柱 勾陳等의 凶神을 만났으므로 生氣하나만으로는 一吉이 萬凶을 不可救濟라 하겠으며 檀紀四二三七(一九⦁四)年 그의 나이 三十歲 되는 해는 皇帝의 特赦로서 풀려났으니 그때의 遊年은 二十九歲에서 三十二歲 사이가 坤上의 四金 偏官運인데 生門歸魂이나 刀刃相接하고 庫宮이라 까딱하면 獄中寃鬼가 될 법도 하지만 天穻가 天沖을 만나니 부딪혀 깨어지는 相이요 또 華蓋宮의 偏官은 그대로 獄中인데 空亡을 受하니 獄中이 빈 格이라 結局 풀려나게 되고 또 生門歸魂은 生還을 뜻함도 된다.{382}
光復을 맞이하여 建國을 하고 그가 初代 大統領이 된 것은 檀紀四二七八年(一九四五) 乙酉에서 檀紀四二八一年(一九四八) 戊子年 사이인데 그때에 遊年은 坤上九金官星의 運으로서 六十七歲에서 七十五歲까지의 運이다.
生門生氣의 九金官星이 空亡에 드니 金空則 鳴이라 七十四歲의 老齡으로 光復된 祖國의 初代大統領이 되었으나 뒤이은 六·二五의 悲劇은 우리 民族史에 있어서 가장 慘酷한 事件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事件은 國運의 탓이지 결코 한 統治者의 잘 잘못으로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一國을 다스리는 統治權者의 遊年運路가 결코 이러한 國難이라는 悲劇的인 關係와 無關할 리가 없다. 檀紀四二八三年(一九五十) 庚寅年은 雩南의 나이 七十六歲로서 遊年은 時上上干의 十土財運이니 이 또한 中二와 坤四가 三合하여 金局의 官殺을 形成하고 驚門 絶命에 庚加己刑格이요 芮星과 官劫 桃花 등 許多 凶格이라 金星이 官鬼라 兵禍는 必然之事라 하겠다.
檀紀四二九三年(一九六十)의 四一九는 國家的으로나 雩南 個人的으로나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했던 歷史的소용돌이가 아닐 수 없었다.
이때의 雩南의 나이는 八十六歲였으니 遊年運路 艮上上干의 三木比和運이었다.
比和는 劫財之神이요 또 對立者요 競爭者이니 한마디로 政敵이라 하겠다.
三木은 또 時支도 되므로 手下 百姓들과 政敵들의 野合的인 强勢밑에서 束手無策일 수밖에 없다.
世爻 八木은 水中 浮木이요 艮上 三木은 居旺한 着根之木이라 그 勢力은 比較도 안되리만큼 强한 것이다.
이 莫强한 實勢앞에 抗拒할 氣力을 잃은 雩南은 마침내 하와이로 亡命길에 오르니 그의 나이 八十七歲부터는 兌上 上數四金의 偏官 疾厄宮에 떨어져 雙金 疾厄에 杜門을 만나므로 異域하늘에서 病苦와 신음타가 마지막으로 還國하여 九十一歲에 逝去하니 그래도 極盡한 禮遇속에 國立墓地에 安葬되므로 老英雄의 一生은 끝을 맺은 것이다.{383}
雩南의 還國 第一聲으로 읊은 詩 한수가 생각난다. 願與三千萬 俱爲有國民 暮年江海上 歸作一閑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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