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李舜臣將軍(檀紀 三千八百七十八年(一五四五年)) 三月八日子時{372}
日宮에 辛加庚하니 白虎出方에 刀刃相接이라 武雄의 生涯가 歷歷한데 門卦마저 傷門 歸魂에 將神은 九天이라 秋霜烈日과도 같은 그 氣慨를 가히 헤아림직 하다.
中宮에 雙官星은 雙白으로 이뤄져 月上二火孫爻에 剋을 受하니 傷官之命이요 歲上 三木比和가 生門 福德에 天乙地丁하니 格曰 交泰요 干支相合은 三奇相佐라 吉之吉相인데 단지 中宮과 歲月이 三二九(寅巳申)三刑으로 中官이 歲支를 剋하므로 不出世의 英雄이 苦難을 甘受해야 할 宿命的 悲哀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歲日이 月支를 生하고 月支가 時支를 生하고 時支가 中官을 生하나 中官은 不逢印星이라 오히려 歲日을 刑剋하니 그야말로 中宮 雙白은 養虎爲患格이 되고 말았다.
八木己身은 비록 居脫之地라 하나 運路엔 逢 長生이요 得令의 八木이라 强弱은 均調한데 木은 仁慈 寬厚라 生養之心이 濃厚하다.
故로 能剛能柔하니 强柔兼全의 人品을 가졌고 傷門歸魂에 辛加庚이라 그의 過剛無比한 忠義之心을 엿볼 수 있겠다.
遊年 二十八歲에서 三十二歲는 비록 運이 財宮에 들었으나 一點客土가 上迫下泄의 凶地에 앉아 中中의 雙白을 助하므로 二十八歲의 武科에서는 落傷으로 因하여 盡忠報國의 壯志가 일시 挫折을 맛보지 않을 수 없었고 三十二歲때에 비로소 武科에 及第하는 晩運을 누렸다.
그러나 遊年 三十三歲에서 三十八歲까지는 印綬落空의 運으로서 順坦치 않은 그의 出仕의 길을 알 수가 있겠다.
그가 訓練院奉事와 忠淸兵使軍官을 거쳐 鉢浦萬戶가 된 것은 三十六歲였지만 그는 勤務한지 二年만에 私怨에 依한 報復으로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373}
그 뒤 그가 井邑顯監에서 七階品이나 뛰어 正三品의 全羅佐水使로 拔擢된 것은 遊年 四十七歲의 日上 偏財運으로서 中官을 生하기 때문이었지만 그가 저 有名한 鳴粱大海戰에서 찬란한 戰功을 세운 것을 마지막으로 戰死한 것은 五十四歲乾上 比和 三木運으로 中宮 九金과 月上 二火 그리고 遊年運路인 三木이 寅巳申 三刑이 發하여 遊年자리를 刑剋하기 때문이었다.
또 이 자리는 絶命의 五土가 地盤에서 九金을 生해 주기도 하니 亦是 從命運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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