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處 : 東奇精解(李奇穆 著)
 

海公 申翼熙{417} 甲午年六月初九日

海公은 그 人品이나 力量等을 한마디로 하기 어려우리만큼 革命家인가 하면 敎育家이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또 經綸있는 政治人으로서 國民的推仰을 받던 이다.{418}

貴公子다운 風貌에 어울리지 않게 光復以前亡國生活險難했고 光復以後祖國땅에서는 政治的 民主主義爭取하기 獨裁政權과 맞서 싸우느라 寧日없는 나날을 보내다 하마터면 이룰 뻔 했던 大望의 꿈을 目前에 둔 채 急逝하고만 不世出大器라 하겠다.

그렇다면 先生命局過然 어떤 宿命으로 點綴돼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다.

艮上 命宮生門生氣를 띤채 十土得令 居剋食傷臨月하고 中宮雙印이 앉아 化殺을 하므로 貴格이라 하겠고 時上日干網高六尺이라 人品高邁하다고 하겠다.

中生日하고 日生月하여 月生歲하고 歲生時하여 時生中하므로 四支 中宮通氣를 이루었다.

遊年 十六歲에서 二十歲 사이가 震上 比和宮에서 杜門을 보고 天馬하여 兄弟同氣를 떠나(杜絶) 日本遊學을 떠났으니 乙卯貴人陞正殿이라 아주 適切이라 하겠다.

二十歲以後 二十六歲까지의 巽上 開門 天宜財運에서는 結局 財生官이라 在日統一團體學友會結成하여 雜誌<學之光>發行하고 國內에서는 축구단 組織奇貨抗日靑年團의 바탕을 만들기도 했다. 後 遊學을 마치고 돌아온 海公東明講習所를 열어 新文化를 가르치고 또한 中東學校에서 敎鞭을 잡기도 하다가 二十三歲에는 普城法律商業學校에서 比較憲法等講義하기도 했으니 이 모두는 亦是 같은 遊年部位에서의 일인 것이다.

開門 天宜財爻上數官爻하니 結局 中宮印綬하므로 갖가지 文化學問的活動可能하게 된 것이다.

海公本格的抗日運動을 하게 된 것은 마침내 中國上海로 건너가 臨政加擔하고 光復直前까지 臨政內務部長이라는 要職을 맡았었다.{419}

五十二歲歸國海公五十五歲制憲國會議員當選된 것을 비롯하여 五十七歲 六十二歲等 세차례의 選擧에서 故鄕廣州에서 三選議員이 되었으니 그때의 遊年時上 六水 財爻支數八木偏官하는 五十五歲六十歲까지와 中宮 上數 二火에서 六十二歲를 먹으므로 時上 六年中宮二年이 모두 같은 脈絡殺人的惡條件 속에서도 野黨을 이끄는 指導者로서 싸울 수가 있었다.

마지막 六十三歲부터 七十歲까지의 巽上運에서는 開門天宜로서 그야말로 乾坤一擲大機會라 밀어왔었지만 丙申小運時上 偏官位에 떨어지고 日干己身天綱에 들어 드디어 急逝하고 말았다.

丙申年行年運歲月日 三支가 모두 坤上居沖地에서 景門絶命을 만나고 天地干儀戊加戊라 이는 伏吟峻山이라 하여 凡事閉塞으로 靜守爲吉이라 했는데 險峻遊說行脚을 돌아다녔으니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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