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範奭 前初代國務總理{407} 檀紀四二三三年(一九○○) 十月二十日 午時
中宮七火가 三殺會動을 作하고 坤上九金이 正印이나 上數二火와 歲月支上數 三木이 寅巳申三刑을 同時에 하므로 殺氣가 重疊한 四柱인 反面 또 한편으로는 隣接한 印星이 休門福德에 丙奇를 만나고 日時가 景門天宜에 天甫太陰이라 文章이 또한 秀麗하니 文武兼全한 出將入相의 仁勇을 갖춘 風雲의 奇才라 하겠다.{408}
歲月의 雙孫이 中宮 七火를 生하여 三殺로 휘몰아 日時를 助하고 日時가 다시 歲月을 生하므로 四支中宮이 無漏疎通이라 奇局을 形成하고 六水世爻는 火方에 居하므로 頭腦가 明晳하고 柱中 七火가 顯揚하니 心高志大한 相이다.
幼小時부터 知覺이 出群하여 祖國光復을 爲해 中國으로 건너가서 獨立軍에 加擔하고 弱冠二十一歲에 저 有名한 淸山里戰鬪의 英雄으로서 我軍 六十名이라는 僅小한 犠牲으로 倭兵 千二百名을 射殺하는 大戰果를 거두었으니 그의 柱中遊年은 十五歲에서 二十三歲 사이의 坤上 三殺의 終極數인 九金 正印方으로서 休門 福德으로 景門天宜의 己身을 生해주므로 不死神과도 같은 勇力을 發輝할 수가 있었고 九金上下가 歲月上 三木 傷官과 寅巳申三刑을 作하므로 殺氣가 發生하였다.
光復後 歸國해서는 初代國務總理로 任命됐으니 그때는 四二八一年 戊子였고 將軍의 나이 四十九歲때였다.
當時의 遊年은 日上의 五土正官運으로서 四十六歲에서 五十歲 사이였는데 正官에 景門福德하고 天甫太陰等의 大吉格이니 官爵이 一躍 領相의 位에 까지 뛰어올랐지만 四二八三年(一九五○) 五十一歲되던 해에는 遊年이 다시 艮上 比劫인 六水의 空亡位에 들어 비록 開門이긴 해도 官職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그 뒤에 다시 副統領에 出馬했으나 落馬之運을 맛봤으니 이때도 亦 五十六歲까지의 艮上 空亡의 劫財運이 있었기 때문이었다.{409}
檀紀四二九三年 將軍의 나이 六十一歲되던 해는 參議院議員에 當選되기도 했으니 이때의 遊年은 兌上七火의 財運에서였다.
歲月上 雙孫이 七火財를 生하고 七火財爻가 다시 日上正官을 助起하므로서다.
檀紀四三百五年(一九七二)은 將軍의 나이 七十三歲로서 이때의 遊年은 乾上 八木食傷으로 傷門生氣에 逢歲馬 天馬하고 天柱 九天에 天戊地己는 物以類聚와 好逸惡勞에 坐食山空이니 天地에 寂寞이 드리워지고 遊年小運 壬子는 巽上의 死門遊魂과 六儀擊刑에 떨어져 一水兄爻가 大運의 八木을 刑하므로 終命을 告하고 말았으니 傳說의 英雄 鐵驥將軍은 永永 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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