仁石 李敏雨 乙卯年七月二十三日
仁石은 歲上이 알다시피 野黨界에 重鎭으로서 所屬系派를 바꾸지 않은 信義있는 사람으로 여겨져 온 분이다.
그의 性品은 斷乎하면서도 너그러워 두드러지게 그를 미워하는 사람도 없는 反面 또 自身의 親衛勢力을 構築하리만큼 政治的 野心도 別로 없는 사람으로 알려져 왔다.{433}
그래서 政治活動이 再開되었을 때 所謂 兩金勢力의 支持로 總裁가 되긴 했지만 運勢上으로 봐서는 결코 代理管理人 役割이나 甘受하고 앉았을 數가 아니다.
仁石의 命局을 살펴보면 歲支上의 正官이 雙九金으로서 生門天宜에 天丙地丁이라 天遁에 該當되고 月日兩支가 休門으로서 天乙地丙이니 有門有奇한데 다만 時上 孫爻가 沖爻로서 門卦 共凶에 天丁地辛이라 四支上에 三奇를 共得하니 이는 奇士之命이다.
歲助中하고 中助日하여 奇門成局인데 月日이 時孫을 生하여 四支 中宮이 成局과 通氣를 同時에 이루었으니 時上 食傷이 歲官을 刑剋하므로 傷官格이다.
近間의 遊年이 六十六歲에서 七十一歲까지가 時支의 孫上 偏印運으로서 身弱四柱에 빌고 偏印이지만 渴時一滴이 如甘露라 大權(黨權)을 獲得하기엔 넉넉하지만 결국 地盤의 食傷을 깔고 앉은 狀態에서 얻어진 黨權이고 보니 언젠가는 紛爭이 惹起될 素地는 充分하다 하겠다.
遊年 七十二歲에서 七十三歲는 中宮偏印上의 二火食上이라 이는 挑戰과 試練을 겪어야 할 時期로서 우선 孫動則剋官임은 六親通變의 常識인데 如此한 常識線에서 問題를 한번 살펴본다면 時上에서는 二火食傷이 水地에 앉아 上數의 印爻에 沖剋을 受하니 力不足으로 勢力을 扶植시킬 수가 없어 後退를 한 結果가 되었지만 中宮上에서는 完全 逆地思地가 된 셈이다.{434}
水中에서 陥歿의 危機를 겪던 食神이 中央上干에 浮上함으로서 起死回生하는 運氣를 얻어 歲上 官星을 挑戰(孫刑官)하니 七十二歲인 丁卯運에 들어 相對(手下)는 得勢가 되고 我는 失時가 되어 結局 名目上의 總裁로 轉落되고 말았으니 이 어찌 運勢의 造化가 아니며 하늘의 뜻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歲生中하고 中印이 上數의 孫爻를 沖剋하므로 完敗는 免한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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